원작이 있는 영화를 볼라 치면 언제나 갈등한다. 원작을 먼저 읽어? 아니면 영화를 봐? 보통 이런 고민은 비디오를 손에 쥐고 하는 터라, 결론이 쉽게 내려진다. 손에 쥔 놈을 먼저 해 치워야지. 그리고는 영화가 끝나고 후회한다. 아. 원작을 먼저 읽을 걸.. 영화가 이렇게 훌륭하다면 원작은 감동의 도가니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영화가 시간관계상 버렸을 장면들이 보고 싶다는 안타까움도 생겨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원작을 장바구니에 담았을 정도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의 스포일러를 안 읽고 시작하는 나로서는, 무슨 복지 국가의 사회보장 제도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늙어가는 사람들의 옛 이야기 정도"로 틀을 만들고, "왜 노인을 위한 사회 보장 제도는 이렇게 형편없는 거야?" 정도의 재료를 사용해서, "인생 뭐 있어? 늙는 거지."정도의 가치로 양념을 치는 영화.
뭐. 반은 맞았다. 노인들의 옛 이야기가 틀이고, 노인들의 회한 역시 영화 속에 적당히 섞여 있다. 다만 건더기가 틀렸다. 영화의 건더기는 살인(?)이었다. 그것도 영화사에서도 손가락에 꼽을만한, 상당한 수준(?)의 살인마가 등장하는 살인 영화다. 그렇다면 그 살인마가 노인을 마구자비로 살해하냐고? 흐흐.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사막을 비추는 영상마냥 영화를 아우르는 분위기 (혹은 주제)에 머무르며, 실제 줄거리는 살과 피가 튀는 하드코어한 살인 장면에서 만들어진다. 뭐, 정리하자면, 노인들의 이야기는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속하고, 살인자의 이야기는 형이하학적인 영역에 속한다고 할까? 살인마 이야기가 건더기라면, 노인들의 이야기는 건더기가 내는 "맛"이라고 해야 할까?
제목. 정말 오묘한 맛으로 지었다. 원작이 빨리 보고 싶어지는 영화. 별 다섯 개. 명작이다. 개인적으로 오래간만의 별 다섯 영화. ★★★★★
PS) 이 영화에는 반전이 있다. 흐흐. 반전은 바로!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는 그 장면이다. 누구도 영화가 거기서 끝날 줄은 몰랐을걸?
PS) 영화를 보고 나서 검색해 보니, 의외로 복잡하게 해석하는 분들이 많아 놀랬다. 원작 뿐 아니라 무슨 "시"를 읽어 봐야 영화가 이해 될 거라는 분도 있었다. "시"는 커녕 "포스터"도 안 본 나는, "나는 왜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지"에 대해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 뭐.. 재미있게 봤으니.. 재미있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