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국제연애(국제결혼)를 바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매우 다양하다. 혀를 쯧쯧 차는 사람도 있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으며, 칭찬하는 사람, 동정하는 사람, 아무 생각 없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시각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민족을 팔아 먹는 매국의 길로 보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저출산시대에 있어서의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국제화시대를 증명하는 현상이라며 사회적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도 있으며, 외국인 맞선 등을 통해 한 몫 잡아 보려는 장사꾼도 있다. 그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사귀는 것일 따름인데, 모두가 한 마디씩 떠들며 거들어 대는 이런 현상. 쉽게 짚고 넘어가기엔, 만만치 않은 구석이 있다.
< 조합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시각 >
“한국남자 + 백인여자”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반응은 찬사에 가깝다. “그 남자, 능력 있다.”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며, 간간히 “민족적 승리”라는 술 취한 목소리도 들린다. “미녀들의 수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여성 외국인은 모 신문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백마를 타겠다(?)며 달려드는 한국 남자들이 너무 많았다.”며 한국 남자들의 백인선호사상(?)을 비꼰 적이 있을 정도다.
이에 반해 “한국여자 + 백인남자”의 조합은 경멸에 가까운 평가가 흘러 나온다. 모 백인과 사귀고 있다는 여성 연애인 이야기가 기사화 되자, 포털 사이트의 해당 뉴스에는 온갖 욕설이 달라 붙었다. “헤픈 여자”라는 표현은 다른 욕들에 비하면, 칭찬에 가깝다.(-.-) 난생 처음 들어 보는 온갖 신선한 욕들이 향연을 펼친다. 특히나 몇 년 전, “한국은 영어만 잘하면 여자들과 놀아날(?) 수 있다.”라고 자랑했던 외국인 강사 사건 이후, 이런 시각은 더욱 늘어 백인남자와 사귀는 여자들을 보면 혀부터 차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한국여자 + 동남아 남자” 조합은 특이하게도 한국 여자를 칭찬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저 여자는 진짜 사랑을 했구나.”라며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번 결혼을 하려면 전 집안이 몇 번 정도 흔들려야 가능한 한국의 결혼 세태에서, 가진 것 없을 것이 뻔한 이런 결혼을 결심한 여자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한국남자 + 동남아 여자” 앞서의 경우와는 다르게, 오히려 남자를 동정하는 분위기가 대다수다. 지금이야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 신부가 들어온 탓에 동정의 시각은 많이 줄었지만, 처음엔 “그래. 너도 나이가 찼으니, 어쩔 수 없지.”라는 아쉬움 짙은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많이 좋아졌다는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정도의 시각이 한계다. “나쁘지는 않지만…”이라는 말의 뒤에 붙은 …. 은 “좋을 것도 없다.”라는 문장의 줄임표일 것이다.
그 외에도, “한국남자 + 외국남자” 혹은 “한국여자 + 외국여자” 조합이 있지만, 이건 중요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명하기 매운 난감한 조합이기에, 코멘트를 하지 않겠다. (-.-)
< 성별과 민족주의가 만들어내는 시각>
재미있는 것은 국제연애(국제결혼)에 대해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완고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들은 외국 남자들을 쉽게 사귈 수 있는데, 한국 남자들은 외국 여자들 (특히 서양 여자들)을 사귀기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란다. 완고함은 불만으로 변하기도 하며, 간간히 남녀간의 전쟁(?) 비슷하게 확대되고는 한다. “한국 여자들은 서양 남자만 보면 좋아서 어쩌구, 저쩌구..” 불만은 다시 피해의식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서양 남자들을 좋아하는 한국 여자들 때문에, 한국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동남아 여자들을 사(?) 올 수 밖에 없다.”라는 식이다. 이게 민족주의와 만나면 더욱 더 복잡해진다. “우리 것”을 멀리하는 한국 여자들 때문에, 그리고 “외국 것”에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것”이 씨가 말라간다는 논리다. 졸지에 외국 남자와 사귀는 한국 여자들은 매국이 되어 버린다. 여기에 더해, 한국 남자들과 결혼하지 않으려는 여자들 때문에 “저 출산 문제”가 발생했다는 논리까지 더해지면 (아 놔) 한국 여자들은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다.
앞서 언급한 조합에 따른 다양한 시각 차는, 복잡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점차 확대되어가는 여성들의 권익과 높아진 (혹은 남성과 평등해지고 있는) 지위. 이에 반해 조금은 더 초라해진 남성들의 현실과 이 때문에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 게다가 여전히 남성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군대 문화의 잔존현실. 여기에 세계화 시대가 가지는 국적과 민족의 모호함, 세계적인 저출산 현상, 동남아 국가의 신속한 경제발전 현실까지 더해지면, 도가니탕 같은 복잡미묘한 맛을 내는, 국제 연애에 대한 대한민국의 다양한 시각이 나오는 것이다.
<국제 연애를 바라보는 시각>
그런데 말이다. 조금 우습지 않은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귀겠다는데, 무슨 국제 정서와 민족적 자부심? 한국 내에서 국제 연애를 바라보는 다양하고 복잡한 시각엔 사랑하고 있는 당사자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만이 들어 있는 것이다. 국제 연애하고 있는 그 사람들. 서로 좋아서 사귀는 거다. 타인의 취향마저, 내 취향으로 재단하려는 생각. 이거 무척이나 위험한 접근이다. 특히나 남성우월주의 (혹은 여성비하)와 민족주의를 더해서 가져가려는 그런 시각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파시즘으로 빠질 수도 있다. 히틀러의 유대 민족 사냥도 독일민족의 우수성을 드높이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세계화라는 이름 하에 세상은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더 많이 외국인들과 부대끼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외국인들과 연애를 하는 국제커플들도 많아질 것이다. 사람은 사람일 따름이며, 사랑 역시 사랑일 따름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 위에 편견이 더해질 때, 우리는 그 시각을 인종차별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하는 사랑을, 자신의 시각으로 덧칠해서 비난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시각을 편협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