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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데이트는 이렇게

2007. 5. 11. 14:27 | Posted by 곰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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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할 것인지 물어보고 놀고, 뭐 먹을 것인지도 물어 보고 먹는 민주적인 데이트를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 데이트는 보나마나 뻔하다. 우왕좌왕 하다가 망하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히나 당신이 남자라면 이런 무계획은 첫 번째 데이트를 마지막 데이트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시나리오는 “만나서 ? 영화보고 ? 커피 마시고 ? 집에 가기”의 정규코스 보다는, 인터넷의 데이트 정보와 도시락 웹진의 “파티&페스티벌”의 내용을 토대로 스스로 만드는 특별코스를 추천한다. 색다른 장소에서 함께 하게 되는 색다른 경험은, 서로에게 마음을 더 열게 만드는 묘약이 될 것이다.    
 
 
 적당한 시나리오와 더불어 적당한 이야기 거리도 필수다. 가능하면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이 좋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회면 신문기사나,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역시 약발이 먹힌다. 앞서 준비한 시나리오에 맞춰 이야기 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전시회에 갈 계획이라면 해당 작가의 프로필을 기억해 둔다거나, 고궁을 산책할 생각이라면 고궁에 얽힌 야사 한 두 가지 정도는 미리 찾아 두자. 화재를 풍성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지적 능력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가끔씩,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처절한 인생의 실패담이나 미칠 것 같이 괴로운 집안 이야기를 첫 데이트에서 늘어놓는 사람이 있던데, 아무리 상대가 편하게 느껴져도 이런 오버는 금물이다.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데이트를 망칠 뿐만 아니라, 머리끄덩이 잡고 싸울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동방예의지국의 미덕은 데이트에서도 드러난다. 예의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광경은 분명 아름다운 장면이지만, 갑갑한 상황이기도 하다. 첫 데이트는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시간이다. 평소답지 않게 주저주저 하고, 지나친 예의에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오히려 첫 만남이라는 황금 같은 시간에 대한 예의 없음이다. 자신감 있게 그 시간을 즐겨라. 마음을 가볍게 먹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위축될 필요는 없다. 또한 억지로 가릴 필요도 없다. 솔직하고 당당한 당신의 모습은 당신의 결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당신을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할 것이다. 진정한 예의는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에 있다.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그 말을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당신의 예의 지수는 충분히 A+를 받을 수 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꼭 얼굴에 티 낼 필요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의 모습을 봤다고 해서,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 일리는 없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비록 데이트는 아쉬운 마음으로 끝나게 되겠지만, 그건 서로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불운한 인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다른 데이트에서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향해 인상을 찌푸린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 데이트는 즐거움을 찾으러 나간 자리다. 상대가 비록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소한의 매너인 것이다. 
 
 
 즐겁게 첫 데이트를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지상과제는 당연히 전화번호를 받거나, 주는 일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자존심 상하게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말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대부분 남자들이 전화번호를 얻어내는데, 이때는 남성 특유의 자신감보다는 돌려 말하는 매너가 필요하다. “전화번호가 뭔가요?”라고 묻는 직설화법 보다는 “다음에 전화해도 되나요?”라고 묻는 돌려차기가 더욱 효과적이며, 애프터 신청을 할 때에도 “다음에 또 봅시다.” 보다는 “내가 좋은 중국 음식점을 아는데 같이 갈래요?”가 보다 부드럽게 먹힌다. 마음에 드는 상대라면, 다음에 볼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헤어지기 전에 상대방의 마음에 가벼운 여운 하나 남기는 것도 좋다. 당신이 남자라면 노점에서 예쁜 머리핀 하나 사서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요.”라며 작은 선물  
하나를 남긴다거나, 혹은 예쁜 오렌지나 한라봉 같은 흔하지 않은 귤을 하나 미리 준비했다가 건네는 것도 센스 있는 마무리 작업이 될 것이다. 여자의 경우엔 헤어지기 전에 “즐거웠어요.”라는 말과 함께 남자의 손을 살며시 잡아준다거나, 아니면 가볍게 포옹해준다면 남자는 집에 가며 내내 그 따뜻한 감촉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첫 번째 데이트는 연애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다. 서로를 알아가는 첫 걸음이며, 감정이 시작되는 첫 시간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그 후로도 지속되어,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면, 첫 번째 데이트는 그들의 사랑이 씨 뿌려진 첫 번째 장소로 추억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첫 번째 데이트가 약속되어 있다면, 조금만 더 생각하고 고민해서 준비하기를 권하고 싶다.  

이 글은 KTF의 도시락(dosirak.com)에 기고된 글로, 외부 전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