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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씨와 프로메테우스 - 차의 기원

2006. 9. 11. 10:31 | Posted by 곰아재
차(茶)는 고대 중국의 삼황오제 시대부터 마셨다고 합니다. 삼황오제 시대는 대략 5000년 정도 이전이라고 하니, 인류의 문명이 시작한 시기와 더불어 차는 사람들에게 애용되어 온 듯 합니다.

차를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준 사람은 신농씨였습니다. 성은 강이고 이름은 열산씨(烈山氏)로 알려진 이 전설적 인물은 서양의 프로메테우스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노여움을 무릅쓰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었다면, 신농씨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람들에게 의학을 전해준 인물이었습니다.

질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미신에만 의존해 병을 치료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애처로워했던 그는 몸소 70여 가지의 풀을 뜯어 먹어가며, 어떤 풀이 사람에게 약이 되고, 어떤 풀이 사람에게 독이 되는지를 연구하였답니다. 그의 연구는 후세에 정리되어 신농본초경이라는 책으로 편찬되었고, 그의 이런 노력 덕분에 인류는 약초라는 인류의 자산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에게 약초를 선물했던 그는, 풀을 연구하는 도중 독초에 중독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신은 인간이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꽤나 즐기나 봅니다.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카프카스 언덕에서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여야 하는 신의 징벌을 받아야 했고,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을 연장하게 만드는 약초를 찾아내 생명연장의 꿈을 꾸게 했던 신농씨 역시 신의 노여움을 받아 독초 속에서 괴롭게 죽었으니까요. 어쩌면 신은 인간에게 적당히 고통을 나눠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염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었던 동서양의 이러한 영웅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는 없는 것이겠죠.

어쩌면 신농씨가 신에게 노여움을 받았던 것은, 생명 연장을 가능하게 하는 약초를 찾아낸 것보다, 차(茶)를 발명(?) 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인간에게 고통을 나눠 주기로 작정한 신이었다면, 사람들이 빨리 죽는 것보다 오래 사는 편이 즐기기에(?) 더 유리하거든요. 그런데 신농씨가 우연히 차를 찾아내해, 신은 적잖이 당황한 듯 합니다. 차가 주는 육체의 휴식과 마음의 평화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휴식 문화였거든요. 인간 세상이 보다 더 괴로운 곳이 되기를 원했던 신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차의 고급스러운 휴식 문화가 전파되는 것을 바랬을리 없습니다. 그래서 신농씨를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게 한 후, 하늘로 데려간 것이 아닐까요? (종교적 해석은 절대 금물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염제 신농씨(神農氏).


가끔 신문이나 뉴스에서 광폭한 전쟁과 잔인한 범죄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인간에게 차와 약초를 가져다 준 신농씨와 인간에게 불을 건네 고통을 당했던 프로메테우스를 생각하고는 합니다. 인간이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신의 의미를 온 몸으로 저항했던 프로메테우스와 신농씨가 바라는 인류의 미래가, 과연 지금과
같은 세상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점점 광폭해져 가는 현대의 인류에게 사람에 대한 사랑과 평화에 대한 전령을 띄워줄 새로운 신농씨와 프로메테우스는 없는 것인지. 시원한 한줄기 차 향기처럼 새로운 시대를 향한 약속을 우리 앞에 펼쳐 놓을 영웅은 없는 것인지. 차 한 잔을 마시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