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펜텍EX 홈페이지
선생이라는 존칭을 뒤에 붙이니, 왠지 코믹해지는 느낌이다. 선생이라니. 새파랗게 젊은 20대 초반의 학생에게 어울리는 표현인가? 멋쩍은 느낌은 들지만, 문제 될 것 없다는 생각이다. 선생이란, 존중 받을만한 사람에게 붙이는 관례적인 호칭이며, 존경 받을 만한 사람에게 붙여 줄 수 있는 하나의 표식이라고 해 두자. 이윤열. 그럴만한 자격이 충분히 된다.
게임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이윤열은 프로게이머다. 한때, 그와 상대할 자가 없는 최고의 선수였고, 현재도 극강의 포스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대표 게임 선수다. 소속팀인 펜텍이 워크아웃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잠깐의 문제를 겪고 있는 듯 하지만, 그가 다시 예전의 기량을 찾아 당연하다는 듯이 정상에 올라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선수들은 여럿 있어 왔다. 임요환과 최연성이 그렇고, 강민과 박정석도 그랬다. 이들을 향해 형편 없는 실력이라며 비웃는 경우도 많지만, 꾸준히 메이저리그와 프로리그에 얼굴을 비추는 한결같은 모습과 상위권의 성적에 랭크되는 실력은, 비웃는 자들을 향해 말 없이 비웃음을 되돌려줄 뿐이었다. 누가 이들처럼, 한결같이, 그토록 오랫동안, 정상권에서 선수생활을 해 왔던가? 온게임넷에서 우승 한 번하고, 거기에 연봉 1억이 넘어가게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하위권 성적에 머물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숫한 스타 프로선수들에 비한다면, 이들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선수들임이 분명하다.
한국의 E-SPORTS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이 크다.
이윤열. 어눌한 말투에 귀여운 인상이어서 꽤나 여성 팬이 꽤나 많은 프로게이머. 얼마 전, 르까프 감독과 결혼을 선언(?)한 안연홍씨도 그의 팬이라 했던가? (안연홍씨가 대부업 광고에 나오는 것을 보고 말이 많던데, 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르까프 감독도 참, 힘들고, 힘들게, 프로게임 팀을 이끌어 왔다. 지금이야 제대로 된 스폰서 잡아서 먹고 살만해 졌겠지만, 어머니 약값 하라고 형님이 보내온 돈으로 팀 운영했다고 하던데, 모아둔 돈이 얼마나 있을라고. 그런 사람하고 결혼하려고 마음먹은 안연홍씨도 대단한 사람이다. 조금만 머리 굴리면, 더 조건 좋은 사람하고 결혼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다들 알다시피 결혼은 연애와 달리, 현실이거든.) 말이 갑자기 샜다. -.- 하여간 온게임넷 사상 최초로 황금 마우스를 거머쥔 선수. 온게임넷 우승, MBC 메이저대회 우승, 게임TV우승을 한꺼번에 해 버린, 사상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 프로게이머로서 붙을 수 있는 온갖 화려한 수식은 다 달라붙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
결혼한다고 하던데.. 행복하시길..
내가 이 선수를 진정 대단하게 생각했던 것은 오래 전 읽은 인터뷰에서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정말 힘들게 프로게이머 선수를 했고, 고등학교를 간신히 마친 다음에 밥만 근근이 먹을 만한 상황에서 노력해 그 자리에 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모든 식구가 한 집에 살지 못하고, 형은 친척집에, 누나은 어디에, 이런 식으로 떨어져 살았단다. 그 가난 속에서 힘이 되어 준 것은 자상한 아버지의 믿음이었고, 따뜻한 아버지의 사랑이었다는 내용도 실려 있었다. 그런 기사를 머릿속에 담아 두고 있다가, 2005년도에 그의 기사를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었다. 이윤열 선수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기사였다. 충격에 빠진 것이었을까? 그는 본선진출도 하지 못한 채, 슬럼프에 빠져 한참을 밑바닥에서 헤매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부활했다. 2006년에. 이윤열 선수는 온게임넷 시즌 2에서 우승. 그 누구도 받아 보지 못한 골든마우스(3회 우승자에게 주는 마우스)를 받게 된다. 그때 인터뷰에서 그는 울먹이며 지금 느끼는 모든 기쁨과 영광을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친다고 했다.
나. 헝그리 정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힘든 현실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뿌리는 빅브라더의 마약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 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의심과는 별개로, 힘든 현실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 (성공의 범주엔 스스로 행복해지는 경우도 포함된다.)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헝그리 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 자빠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시대에 헝그리한 상황이 주는 페널티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이겨냈다면 최소한 존중의 박수는 보내야 한다고 믿는다. 이윤열. 존경은 아니더라도, 존중의 의미를 담아, 선생이라는 호칭을 붙여줄 자격이 충분하다.
헝그리한 상황에서 자리 잡은 사람들이 대부분 저지르게 되는 실수 중 하나가 성공의 단 맛을 보고 난 뒤에 바로 나태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굳이 사례를 들지 않아도, 수도 없이 많이 볼 것이다. 이윤열 선수의 대단한 점 하나는, 그런 자기 만족을 머나먼 뒷날로 미루었다는 것이다. 국내 그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그랜드슬럼의 대업 이후 충분히 나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정상권에 있었고, 결코 녹슬지 않았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그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활했다. 온게임넷 사상 최초로, 그리고 현재까지 아무도 달성하지 못한 3회 우승 트로피를 끌어 안으며 말이다. 그에게 존경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코믹하지 않은 이유다.
출처는 온게임넷
우연히 이윤열 선수의 기사를 다시 접하며, 그 동안 이 선수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풀어 보았다. 어린 선수고 아직 학생이기에 더 큰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 열정과 노력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린 만큼 더 노력해서 대한민국의 게임 역사 위에 이윤열이라는 이름을 크게 새겨 놓길 바란다. 팬으로서, 오랫동안 응원할 생각이다. 이윤열. 파이팅!
얼마전 읽은 인터뷰 기사 내용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7071550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