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을 이해하는 건 나 뿐인건가?
오래간만에 블로그질을 해 보니, 다들 한화 김회장을 욕하는 분위기다. 사실, 그다지 잘 한 일은 아니다. 아들이 청담동에서 술 먹다가, 여러 명한테 다굴 당해 울면서 집에 왔다고 똘마니들 다 데리고 북창동으로 쳐들어가다니. 명색이 사회 지도층이고, 태생이 엘리트인, 재벌 총수가 보여줄 시츄에이션은 아니긴 아닌 것이다. 서민들이야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고, 주먹에 얻어맞고 법에 호소하기도 전에 눈물 흘리는 일이 태반사지만, 그래도 김회장 정도라면 주먹보다 법에 호소해도 충분한 형편인데, 주먹 먼저 나갔으니 여기저기서 욕 쳐 먹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그렇지만 한편으로 불쌍한 마음도 든다. 평범한 시민인 나같은 사람한테 동정을 받을만한 상황은 아니겠지만, 공부 잘 하는 아들이 밖에서 술 먹다가, 다굴 당해 집에 왔으면 열불 안 터질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북창동 양아치들한데. 아.. 갑자기 어감이 심히 난감해진다. 북창동. 서울 시내에서 사회생활 1년 이상 해 본 남자분들이라면, 북창동식 서비스가 전하는 그 묘한 긴장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차마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으니, 인터넷으로 뒤져 보시길. 그리고 조금 더 뒤지다보면, 북창동 양아치들의 그 더럽고 치사한 작태들도 들어날테니, 오래 오래 검색해 보시길.. 내가 아는 북창동 양아치들은 정말,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인지 모르는 것들이 모여서 온갖 개판을 다 치는 것 들이었다.. 하여간, 닳고 닳은 북창동식으로 흠뻑 서비스 받은 아들의 눈탱이에 분노가 치솟은 아버지의 화려한 하이킥이 날아가 버리니.. 그 결과로 이 나라가 시끄러워져 버렸다.
솔직한 마음으로 한화의 김회장이 부럽다. 내 아들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맞고 온다면 - 동네 친구들이나, 같은 반 짝꿍의 꼬집기 신공이 아닌 - 동네를 휘어잡는 양아치들이거나, 혹은 경찰도 손 못 대는 조폭 같은 넘들에게 그렇게 맞고 온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솔직히 성질대로라면, 나 역시도 야구 빳다 들고 쳐들어갈 것이다. 물론, 그랬다가는 동네북마냥 두들겨 맞고 골병들어 자리 펴고 누워있을 것이 뻔하기에,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경찰에 눈물로 호소를 하겠지. 그런데 법이 어디, 서민에게 그렇게 가까이만 있던가? 가려운 속 제대로 긁어나 주던가? 때린 놈이 더 성질 부린다고, 신고했다고 해꼬지나 당하지 않을까 다리나 제대로 펴고 자던가? 그러기에 부러운 것이다. 대한민국의 어느 아버지가, 그렇게 자기 아들 맞고 왔다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칠 수 있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김회장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해할 수는 있다는 거다. 공감이 간다는 거다. 조금 더 솔직한 심정이라면, 양아치들에게 그렇게 당당해질 수 있는 사실이 부럽고, 그렇기에 일말의 동정을 느낀다는 거다. 김회장 아들이 평범한 회사원들과 5대 5 정도로 붙어서, 그렇게 맞았다고 했다면, 이야기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다수인데다가, 북창동 양아치들이다. 법보다 주먹이 앞선 세상에서, 법보다 주먹을 앞세운 이들에게, 법보다 주먹으로 복수를 한 이회장에게 대리만족을 느낀다면 그건 나의 지나친 오버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