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커피

커피잔으로 말하는 다도 (茶道)

곰아재 2006. 9. 11. 10:37

다도(茶道)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도의 궁극적인 의미로는 차를 통해 도(道)를 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만 사전적인 의미로는 차를 바르게 만들고 바르게 먹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차를 바르게 만들고 먹기 위해서는 일정한 형식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을 다례(茶禮) 혹은 차례라고 합니다. (茶는 중국의 어느 지방의 발음을 차용하냐에 따라 “테”와 “차”로 다르게 부릅니다. 우리는 두 가지 발음 모두를 차음한 경우이기에 다, 혹은 차 두 가지로 모두 발음합니다.) TV 등에서 전통한복을 곱게 입은 사람들이 다소곳이 모여 앉아, 여러 절차를 밟아가며 사기 주전자에 들어 있는 차를 손가락 보다 조금 큰 잔에 따라 먹는 광경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그게 다례입니다. 언제 기회가 닿아 그러한 자리에 참석하셔서 차를 드셔 보신다면, 차 맛과 더불어 깊은 우리의 전통의 향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격식이 귀찮지 않으시다면요.

솔직히 저는 다례가 번거롭다고 느끼는 편입니다. 예(禮)에서 비롯되는 차 맛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꼭 형식이 정신을 만든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누천년 내려오는 형식 속에 물론 정신의 숭고한 의미가 깃들여 있겠지만, 그 숭고한 의미가 꼭 형식을 통해 완성되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주전자로 차를 우려내 사발만한 컵으로 차를 마시면서도 다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방짐을 가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다례는 누가 만든 것일까요? 누가 만들었기에 20가지가 넘는 도구를 사용해서 여러 가지 절차를 걸쳐 차를 먹는 것이 제대로 먹는 것이라고 말을 했었던 것일까요? 스타크래프트의 빌드오더도 아니고, 다도와 같은 문화와 전통을 누가 혼자서 정리했을까 싶겠지만, 다도의 방법은 혼자서 정리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것은 중국의 육우(陸羽)라는 분입니다. 그 시기는 대략 서기 774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차는 기원전 신화의 시대부터 있어 왔던 것이기에, 774년이라면 이미 차를 먹는 방법이나 절차가 충분히 완성되어 있을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방마다 차를 만드는 방법이 달랐고, 먹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학자들이 나와 자기네가 만들어 먹는 방법이 옳고, 다른 지역은 틀리다며 갑박을론을 벌이고는 했습니다. 차의 춘추전국시대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육우는 그걸 단 한질의 책, 다경(茶經)을 발표함으로써 그러한 갈등을 한큐에 해결해 버립니다.

처음엔 차의 경전(經典)이라는 뜻의 다경이란 책 제목이 건방지다며 토를 달던 다른 지역의 학자들도 다경을 읽어 보고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만큼 다경의 내용이 방대하고 잘 정리되어 있으며, 높고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경을 쓰기 위해 육우는 수 십 년간 연구를 하고,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집필을 했습니다. 그런 오랜 노력이 들어가 있었기에 어설픈 학자들의 세치 혀로는 감당해내기 어려운 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하나의 일에 매달리다니.. 참으로 놀라운 의지와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그의 차 사랑이 남달랐기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다경에는 차를 먹기 위한 많은 절차와 과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방법대로 차를 먹는 것은 성격 급하신 분들의 성격 개조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는 하겠지만, 바쁜 생활에 있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것들일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도구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젖샘(종유석에서 나오는 물)의 물이 최고라 치던 다경의 글과는 달리 지금 그런 물을 먹었다가는 세균과 식중독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니다. 또 최악의 물이라 적어 놓았던 개울가의 물은 오히려 수돗물보다 더 맛있는 찻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다시 다경을 적게 된다면, 이제 최고의 물을 논하는 것은 웅진 코웨이의 정수기 물이 좋냐, 아니면 청호 나이스의 물이 좋냐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세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불로 물을 끓여야 한다는 다경의 가르침 역시 30초면 뜨거운 물을 끓여내는 커피포트의 위력 앞에서는 고전의 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시대가 바뀌면 형식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경에서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했습니다. 다도(茶道)와 선도(禪道)는 같은 맛(一味)이라는 뜻입니다. 즉 차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정신을 닦는다면, 이것은 도(道)를 수행하는 선(禪)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 대화하며, 그 속에서 참 자신을 별견하는 일은 그 자체가 도를 닦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차를 마시며 깨우침을 얻는 다는 점은 현재에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차를 마시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나 자신을 깨닫고, 혼자 마시는 차 한잔 속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차가 주는 큰 기쁨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도, 차의 도란 결코 전통 사기그릇과 커다란 머그 컵의 차이에서 오는 형식의 도가 아닐 것입니다. 차를 마시는 행위에서 오는 것이며, 마시는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커피잔으로 차를 우려먹으면서도 이렇게 다도를 논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