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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이 지배하는 인터넷 세상이 시작된다.

곰아재 2007. 8. 14. 09:55

난 조만간, 이 나라의 인터넷은 모두 초딩 세력에 의해 지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벌써부터 초딩의 인터넷 지배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2007년 현재, 대한민국의 초딩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초딩으로 살아가고 있다. (요즘, 용이 이 나라의 인터넷을 장악했다고 하던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 역시, 용이 아닌 초딩이다.)


1. 어른과 맞짱뜨다.

초딩. 현실세계에서는 어른들 속에 껴서 자기 의견을 말하려고 하면 “어린 녀석이 건방지게.”라는 핀잔을 먹어야 했지만, 인터넷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이들이 인터넷에 접속되는 순간, 초딩에게도 어른들과 똑같이 “하나의 아이피”가 부여되며, 이들이 클릭하는 모든 기록은 어른들과 똑같이 “동일한 트래픽”으로 취급된다. 뿐만 아니다. 이들의 추천과 반대의 한 표는 역시 어른들과 그것과 동일하게 인정되며, 이들의 댓글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 받는다. 인터넷 안에서의 초딩의 말은, 어린 녀석의 건방진 의견이 아니라, “한 시민의 소중한 의견”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2. 슈퍼초딩의 등장

어른과 동일한 권한을 가졌지만, 이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보다 더 막강하다. 친목 게시판에 가서 댓글 하나 남기는 일도 망설이는 어른들과는 달리, 이들은 거침없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님하. 왜 그러셈? 정신 차리셈!”이라고 호통치기 일쑤고, 기분이라도 상했다치면 어른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욕으로 게시판을 도배하기도 한다. 덕분에, 하드코어한 초딩의 의견은 “보다 적극적인 소비자, 혹은 시민의 의견”으로 인정되어 분위기를 끌고 가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는 전체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또한, 초딩들 특유의 왕따 문화는 다구리 현상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치 총궐기라도 하듯 닥치는 대로 달려들어 게시판을 초토화 하거나, 혹은 사이트 전체를 무력화시키기까지 한다. ( 블로그나 포털 사이트 뉴스 게시판 등에서 펼쳐지는 논쟁(?)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


3. 초딩으로 돈벌기

초딩에게 보다 더 강력한 힘을 실어주는 것은 기업들의 상업성이다. 인터넷 기업의 상업적 가치는 트래픽에서 나오며, 그 트래픽은 인터넷 사용자에게 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민주적인 상업화 공식인데, 이게 너무나도 민주적인 탓에 초딩의 트래픽까지 동일한 상업적 가치로 계산해 버린다. (개가 클릭질을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개에게도 동등한 한 표를 부여한다.) 모든 초딩에게 한표를! 아니, 모든 초딩에게 하나의 아이피를! 이라고 외친 인터넷의 가치로 인해, 기업들은, 혹은 트래픽을 소중히 하는 사이트는, 혹은 구글의 애드센스를 달아 클릭 하나라도 더 보태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초딩은 결코 무시못할 손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나,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초딩 특유의 공격성(-.-)은 사이트를 성공하게 만드는 입소문 마케팅의 주역이 되기도 하며, 혹은 상대를 망하게 만드는 노이즈 마케팅의 전사가 되기도 한다. 한 사이트를 상업적으로 망하게도 만들고, 성공하게도 만들 수 있는 초딩. 그들을 과연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4. 초딩화되는 인터넷 환경

강력한 권력을 가진 “쇼퍼초딩”의 출현으로 인해 인터넷 세계는 혼란을 겪고 있다. 철저한 민주주의 상업성의 원칙에 의해 이들이 우대되다 보니, 초딩의 눈높이에 맞춰 인터넷이 변화되어가는 것이다. 당장 포털 사이트의 뉴스만 봐라. 초딩의 입맛에 맞춰, 최대한 자극적이고, 최대한 낮게 제작되어지고 있다. 초딩의 눈길을 끌만한 소재로 낚시를 제대로 해서 게시판에 댓글이 풍족하게 될 수만 있다면, 그래서 트래픽이 주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이들은 “만선!”이라고 행복해할 따름이다. 언론사들마저 그러는데, 블로그라고 다를 바가 있는가? 온갖 낚시질은 기본이다. 이제는 “까대고, 씹고, 다구리치고”를 해야 인정을 받는다.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고, 다른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는 글들이 최소한의 생각도 없이 쓰여 지고, 최소한의 개념도 없이 유통된다. 초딩이 권력을 갖다 보니, 인터넷은 점점 초딩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5. 초딩스러운 어른들

아. 여기서 하나 정리할 부분이 있다. 이 글에서의 “초딩”은 결코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들”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이 글에서의 초딩은 “초딩스러운 생각을 가지고, 초딩스러운 행동을 하는 인간 군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글은 결코 “초등학생들에게 인터넷을 하지 말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자.”나, 혹은 “모니터에 민증을 까야, 인터넷이 시작될 수 있도록 국가 시스템을 개편하자.”같은 결론으로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다. 또한 중우정치(衆愚政治)를 빗대어, 중우인터넷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것도 아니다. 무조건 “대중이 옳다.” 라고 믿는 편은 아니지만, “대중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는 신념은 확고하다. 나는 문화를 말하고 싶다.


6. 초딩 파시즘

초딩의 등장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누구나 쉽게, 인터넷을 접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소득과 학력의 차이가 정보의 불평등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걱정했던 정책적 고민들이 기우였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론은 보다 가깝게 형성되며, 민의를 보다 쉬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속에서 계속 초딩화된 인터넷을 개탄했던 것은, 초딩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일이 안타까워서였다. 생각이 있는 어른들이라면 대부분 한번 정도는 걱정 해 보았을 것이다. 나와 다른 의견이라면, (인간으로서) 무조건 적이 되어 버리는 초딩스러운 토론 문화와 적이라면 무조건 달려들어 까대고, 씹어야 직성이 풀리는 초딩의 왕따 문화를... 다수의 주장이 민의라면 따라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생각할 수 있는 소수 비판자의 목소리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오고 갈 수 있는 통로 역시 개통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수의 목소리만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이건 당연히 파시즘일 따름이다.


7. 떵의 전쟁

똥은 변기의 구멍을 통해 흘러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 그걸 막아 두면, 고이게 되고, 썩어서 정말 견디기 힘든 냄새가 나게 된다. 상대의 말이 똥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그걸 막을 수는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똥을 누지 않는 인간의 항문처럼 썩게 마련이다. 누가 나와 다른 말을 했다고 해서 개떼처럼 달려가, 익명의 힘으로 변기의 구멍을 막아 버린다면, 당신의 행동은 더 큰 똥을 싸 변기 구멍을 막아 버린 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테르의 이야기는 좋은 충고가 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당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싸우겠노라고” 올바른 토론의 규칙은, 누가 더 큰 똥을 싸는가 내기하며 전쟁을 하는 일에 달려 있지 않다. 내가 말한 만큼, 상대의 의견을  들어 주는 일이며,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일이다. 비근한 예로 초딩문화의 폐해를 두서없이 설명했지만, 초딩 인터넷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의 말과 의견과 똥을, 막아 버린다는 것이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똥을 쌀 수 있는, 자유로운 배설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인터넷 세상은 악취로 뒤덮힐 수밖에 없다.


8. 하버마스의 [소통의 장]

결국, 다른 목소리가 흐를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 초딩의 인터넷 지배를 막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일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이의 다른 주장을 들어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는 일 역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하버마스의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람들 사이의 개인사와 정치적 고민,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공론(公論)의 장(場)이 형성되어진다면, 또한 그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존중되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어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파시즘의 우려는 멀어질 것이며, 소수이기에 상처 받는 일은 보다 더 적어질 것이다. 난 블로그가 그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8. 블로그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떠겠니?

그래도 아직까지는 블로그가 청정지대다. 익명의 리플러와 스팸 블로거가 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고, 댓글을 올린다. 심도 깊은 토론도 곧잘 이루어지고, 수준 높은 글들이 쏟아지며, 존경할만한 블로거들 역시 넘친다. 또한, 서로의 생각을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해주는 메타 블로그 사이트도 존재하며, 토론의 미덕 역시 가장 적절하게 살아있는 공간이다. 자유롭게 대화가 이어지는 유럽식 카페를 예로 들어, 공론의 장을 설명했던 하버마스가 블로그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블로그로 그 예를 바꿔 설명할지 모른다. 그만큼 시스템과 환경은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남은 것은 문화다. 공은 이쪽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블로거와 블로그 팔아(?) 먹고 살고 있는 메타 블로그 사이트로 넘어갔다. 메타 블로그는 배려와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고, 파워 블로거들은 “남의 똥도 똥이다.”라는 배너라도 달아 주어야 한다. 블로그로 컸으면, 블로그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시길... 다른 블로거들도 긴장타야 한다. 초딩이 습격해 오고 있다. 최근 블로그 세계에 올라오는 토론들과 싸움을 지켜보면, 그들이 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블로거들이 더 고민하자. 블심(blog心)으로 대동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