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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를 두드리며 손가락 권법을 연구하는 권법 연구가
곰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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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상 궁금한 것이 있으면 끝을 봐야 하기 때문에, 어제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벽을 보고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 물어 봤지만, 작곡가는커녕 정확하게 언제부터 이 노래가 불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르니, 결국 내 머릿속에서 답을 구하는 수밖에. 처자식까지 버린 채, 열정을 불사르며 연구하는 대상이 왜 하필 마요네즈 송이냐며 아내는 넋두리를 늘어놓았지만, 수도자의 자세로 인간의 순수이성비판 기능에 정신을 담아 마요네즈 송에 대한 명상을 시작했다. 그렇게 3시간을 불 꺼진 방안에 벽을 보고 홀로 앉아 고민을 했다.

그런데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딱따구리랑 마요네즈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거기에 인도는 왜 나오는 것인가?
 
 
또, 뚱딴지같이 사이다는 뭐고?.. 게다가 마지막에는 느닷없이 오땡큐라니.. 흑흑. 절대로 연결되지 않는 단어들의 의미에 나는 절망했다. 오 신이시여.. 왜 이 노래를 대한민국에 뿌려 놓으셨나이까. 그래서 왜 나를 시험에 빠트리셨나이까. 그렇게 절규하다, 문득 연상되는 하나의 이미지. 여기는 인도다. 한 구멍가게 앞에 서 있다. 마요네즈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마요네즈와 케찹을 섞어 놓은 퓨전 마요네즈다. 마요네즈의 상표는 “딱따구리구리 (-.-)”다. 오.. 마요네즈 케찹을 먹어볼까.. 와.. “맛 좋아.” 옆에 진열장에는 사이다도 팔고 있다. 사이다 상표는 “인도인도인도 (-.-)”다. 인도인도인도 사이다를 사서 먹으니까, 가게 주인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오. 땡큐”. 
 
 
3시간 만에 방문을 열고 나와, 초췌해진 모습으로 마요네즈 송의 비밀을 전하자, 아내의 표정이 굳는다. 당장이라도 병원 예약을 할 투다. 그게 처자식을 팽개치고 들어가 연구해 온 결과냐고 되묻는다. 난 할 말이 없다.

사실, 이 이 노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무슨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중독성이 너무나 강해서였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머리 속에는 마요네즈와 사이다가 굴러다닌다. 모르긴 모르지만,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역시,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이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다. 해서, 어디 인류의 말세를 추적하는 비밀종교 집단의 은밀한 찬송가이거나, 혹은 백제의 서동왕자가 신라의 선화공주를 꼬시기 위해 불렀던 작업가 같은 모종의 선동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추측까지 했었다. 물론, 오랜 명상과 고민 끝에, 그런 상상은 시간낭비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 구전되어온 민간동요에 그 의미와 뜻을 찾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골목길, 아이들의 고무줄놀이에서 즐겨 사용되던 이 노래의 가사는, 그저 흥겨움을 만들어내기 위한 추임세 정도였을 것이다. 이 노래가 시작되었던 6-70년대의 시대상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마요네즈와 케챱, 그리고 사이다, 인도와 같은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단어가 수입되던 시절이었고, 때문에 머나먼 타국의 문화에 동경심을 가졌던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자연스럽게 이런 노랫말이 스며들어갔을 것이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딱따구리는 당시 유행하던 만화였기에 (기억들 나시는가?) 자연스럽게 한 자리 차지한 것이었을 테고, 나머지 단어들은 적당한 음율과 발성이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삽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래 속에 나오는 모든 명사들은 4-2-3의 형태로 모양을 갖추고 있다. 딱따구리와 마요네즈는 4글자이며, 케챱과 인도는 2글자이다. 또한 사이다와 오땡큐는 3글자. 때문에 사이다 대신 콜라가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품격 높은 예술이 시대의 정신을 고상하게 반영한다면, 민간에서 펼쳐지는 민간예술은 시대를 풍경화처럼 담아낸다. 익살스럽고 해학이 가득한 조선시대 민화를 보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듯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상의 노래는 우리의 기억을 반추하는 소중한 증거가 된다. 이미 시간이 30여 년이나 흘러, 낙관이 찍히지 않은 조선시대의 민화처럼, 누가 만든 것인지 노랫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지만, 이 노래가 여전히 살아서 그 생명을 가지는 것은, 어른들에게 추억을 가져다주고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해 주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을 연구 분석(?)에 매달렸음에도 노래의 의미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골목길에서 뛰어 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이 노래를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같이 고민하며, 그때의 그 시절을 회상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권하고 싶다. 


이 글은 KTF의 도시락(dosirak.com)에 기고된 글로, 외부 전제를 금합니다